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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letter

엄마의 글 공부

by habit 2021.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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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글 공부

 

손정자 부산광역시 진구 복지로

우리 엄마는 88 세입니다. 시골에서 6남매 중 맏딸로 태어나 공부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글을 모릅니다.

시집와서도 아버지 형제 10 남매 중 맏며느리인지라 1년에 제사가 일곱 번

설 추석명절 차례까지 지내려니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랐을 겁니다.

여기에 더 보태 우리집은 딸만 여섯명에 엄마가 마흔네살에 남동생을 봤으니 손에 물마를 날 없이 살았습니다.

이제 아들 딸 모두 결혼하여 증손자도 두 명이나 있습니다.

자연히 엄마의 손을 필요로 하는 곳은 더 많고 당연히 공부한다는 것은 우리 엄마 얘기가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19로 인해 다니던 수영장도 안가고 복지 관도 안가시니

딸들이 3일에 한 번씩 교대로 엄마 집에 갑니다.

며칠 전 제 차례가 되어 과일을 사가지고 엄마 집에 갔습니다.

"엄마, 오늘부터 공부해 볼까요?" 했더니

"아이고, 지금 내가 뭐를 한다고.

내는 어릴 때부터 옷감 짜고 소 풀 베는 것은 잘해도 공부는 못한다고 마."

"안 그래. 엄마.

은행에 가서 이름은 적을 수 있어야지" 했습니다.

 


엊그제 예금 만기가 되어서 엄마와 은행에 갔습니다.

엄마가 한글을 몰라 이름을 적을 수가 없어서 딸인

제가 엄마 이름을 대신 적겠다고 하니 창구 직원이 그렇게는 안 된다고 하더군요.
엄마 손을 잡고 제가 같이 적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순간 엄마도 저도 참으로 민망했습니다.
"엄마, 이름을 적을 줄 알아야

저승 가도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가 팻말 들고 기다리면 찾아가지.

또 시장에 행운권 추첨을 해도 당첨이 되면 뭐하노?

내 이름을 못 찾으면 지나가는데.

그러니 이름 석 자만 써 봅시다." 했더니,

"인자사 손이 구댕구댕해서 될랑가 몰라" 하시기에 얼른 달력을 엎어놓고

크레파스로 <김초달>을 크게 써 놓고 따라 써보라고 하니

기역(ㄱ)부터 써야 할지, 미음(ㅁ)부터 써야 할지도 모르시더라고요.

그 글자 위에 따라 쓰기를 하는데

엄마 손은 떨리고, 글자라고 할 것도 없이 삐뚤빼뚤했습니다.
그렇게 10번을 쓰셨습니다.
"엄마, 잘한다. 얘~ 얘~ 그기 점 찍고 길게 더 내려오고.

네모 그리고, 오, 됐네.

이게 엄마 성 김영 김씨 김이에요."

"하이고, 뭣이 잘 안 된다."
"아이다. 엄마 이만하면 100점이다.
잘한다.
야, 우리 엄마 진작 공부했으면 사법고시 도전할 건데, 그쟈! 됐다.

엄마 '김초달' 이렇게 하루에 스무 번씩 200번만 쓰고 나면 충분히 할 수 있겠어요.

우리 엄마는 할 수 있어" 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5일 후 엄마는 제가 하는 가게로 오셨습니다.

 

"야~ 야~ 이래 가지고 요래 쓰면 되나?" 하시며 엄마 이름 '김초달'을 썼습니다.

"와, 우리 엄마 진짜 잘하네. 맞다.

이 글자가 엄마 이름 맞아요." 정말 기뻤습니다.
우리 아들이 4살 때까지 자기 이름을 적은 것보다 더 기뻤습니다.
"그래, 엄마. 이제 누구 이름을 써 볼래요?" 했더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아들 이름을 말씀하시더군요.

"우리 아들, 손주호."

"하하하~ 우째 이런 일이!

나는 설마 셋째 딸 정자 부터 쓸라는 줄 알았더니 이제 선생 그만둬야 되겠다."
제가 생각해도 당연히 아들이었죠.
엄마 나이 마흔넷 살에 낳아 남동생이 7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동생 나이 올해 마흔 네살입니다.
엄마의 친구이자 애인이며 우상이지요.
"오늘은 기분 좋게 책거리로 콩국수 사드릴게요" 하니 엄마는 싱글벙글 좋아하며

"우리 선상님 고마운데 오늘은 내가 살게" 하십니다.
삐뚤빼뚤 엄마가 적은 이름 '김초달'을 사진 찍어

가족 대화방에 올렸더니 이번 일주일은 여기저기 전화 받느라고

아들 이름 '손주호'를 아직도 쓰고 계신다고.

"내 며칠 있다가 검사 맡으러 갈꾸마" 하네요.


우리들 대화방도 띵동띵동 소리가 요란합니다.

과연 엄마가 아들 다음에는 누구의 이름을 쓴다고 하실지 10만원의 상금도 걸려 있습니다.

한 자 한 자 배워서 멋진 아들. 예쁜 딸들.

고마운 사위들. 손자. 증손자 이름을 쓰시겠지요.

아휴~ 마흔세 명이나 되네요.
"엄마, 건강하시고 운동 열심히 해서 지금처럼 깨끗하고 정정한 모습

그대로 우리 곁에 오래오래 계셔 주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