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의명절 "설"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설날의 유래
1.'설'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하나는 '한 살 나이를 더 먹는'에서의 '살'에서 왔다고 한다. 곧 '살'이 '설'로 된 것인데 그 근거로 '머리'가 '마리'에서 왔다는 사실을 근거로 유추할 수 있음을 든다.
다음으로는 "장이 선다."와 같이 쓰이는 '선다'의 '선'에서 왔다는 설도 있고 '설다(제대로 익지 않다)', '낯설다' '설어둠(해가 진 뒤 완전히 어두워지지 않은 어둑어둑한 때)'설'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또 '삼가다' 또는 '조심하여 가만히 있다'는 뜻의 옛말 '섧다'에서 왔다는 견해도 있다. 첫 번째 두 번째 어원에 따르면 '설'의 의미는 새해 새날이 시작된다는 의미를 되새길 수 있고 세 번째 견해에서는 설날을 몸가짐에 그릇됨이 없도록 조심하는 날이라는 뜻의 '신일'이란 어휘를 챙기게 된다. 한 해의 마지막 무렵을 흔히 '세밑, 세모'라고 부른다. 특히 설날의 전날인 섣달그믐을 가리킨다. 아이들은 '까치 설날'이라 부른다. 옛말로는 " 설"이라 하는데 ''은 '작은'이란 뜻이다. 그러나 동지(24절기의 하나, 태양력으로 12월 22일쯤)를 가리키는 '작은설'과 혼동하면 안 된다. 동지는 1년 중 낮의 길이가 가장 짧고 해(태양)의 힘이 가장 약화된 날이다. 그 다음 날부터 낮이 시나브로 길어지므로 아마도 1년의 출발 기준으로 생각하여 '작은 설'로 삼았던 듯싶다.
2.설이 언제부터 우리 민족의 최대 명절로 여겨지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설날을 명절로 삼기 위해서는 우선 역법(曆法)이 제정되어야만 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설날의 유래는 역법의 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나라가 나름대로의 역법을 가지고 있었음은 중국인들도 진작 인정하고 있었다.《삼국지 (三國志)》에 이미 부여족이 역법을 사용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신라 문무왕 대에는 중국에서 역술을 익혀와 조력(造曆)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를 미루어 보더라도 우리 민족은 단순한 중국 역법의 모방이 아니라 자생적인 민속력이나 자연력을 가졌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짐작할 수 있다. 또 신라의 독자적인 명절이라 할 수 있는 가위[嘉俳]나 수릿날의 풍속이 있었다는 사실에서도 우리 민족이 고유한 역법을 가졌을 가능성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는 중국 전래의 태양태음력이나 간지법(干支法) 이외에 우리 고유의 역법 제정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설날은 적어도 6세기 이전에 중국에서 태양태음력을 받아들인 이후 태양력을 기준으로 제정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한편 역사적인 기록을 통해서도 설날의 유래를 추측해 볼 수 있다.《수서(隨書)》를 비롯한 중국의 사서들에는 신라인들이 원일(元日)의 아침에 서로 하례하며 왕이 잔치를 베풀어 군신을 모아 회연하고, 이날 일월 신을 배례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삼국사기(三國史記)》〈제사〉편에는 백제 고이왕 5년(238) 정월에 천지신명께 제사를 지냈으며, 책계왕 2년(287) 정월에는 시조 동명왕 사당에 배알하였다고 한다. 이때의 정월 제사가 오늘날의 설과 관련성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미 이때부터 정월에 조상에게 제사를 지냈다는 것으로 보아 오늘날의 설날과의 유사성을 짐작할 수 있다. 신라에서는 제36대 혜공왕(765∼780) 때에 오묘(五廟: 태종왕, 문무왕, 미추왕, 혜공왕의 조부와 부)를 제정하고 1년에 6회씩 성대하고도 깨끗한 제사를 지냈다고 하는데, 정월 2일과 정월 5일이 여기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설날의 풍속이 형성되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설과 정월 대보름·삼짇날·팔관회·한식·단오·추석·중구·동지를 9대 명절로 삼았으며, 조선시대에는 설날과 한식·단오·추석을 4대 명절이라 하였으니, 이미 이 시대에는 설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민족의 중요한 명절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설날에 먹는 음식
세배하러 온 사람에게는 설음식(세찬)과 설술(세주), 떡국 등을 대접한다. 떡국은 꿩고기를 넣고 끓이는 것이 제격이었으나 꿩고기가 없는 경우에는 닭고기를 넣고 끓였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이 생겼다. 설을 쇨 때 반드시 떡국을 먹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사람들은 떡국에 '첨세병(나이를 더 먹는 떡)'이라는 별명까지 붙이기도 하였다.
설날에 술을 마시는데 '세주불온(설술은 데우지 않는다)'이라고 하여 찬술을 한잔씩 마시었다. 이것은 옛사람들이 정초부터 봄이 든다고 보았기 때문에 봄을 맞으며 일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뜻에서 생긴 풍습이었다. 설에는 도소주를 마시었는데 이 술은 오랜 옛날부터 전하여 오는 술이다. 도소주는 육계(5~6년 이상 자란 계수나무의 두꺼운 껍질로 한약재로 쓰인다), 산초, 흰삽주뿌리(한약재 백출을 만드는 풀), 도라지, 방풍(산형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뿌리를 한약재로 쓴다) 등 여러 가지 약재를 넣어서 만든 술이었다. 그러므로 이 술을 마시면 모든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1.떡국
떡국은 병탕이라고도 하며 어린아이에게 몇 살이냐고 물을 때 "떡국 몇 그릇 먹었냐?"라고 묻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를 막론하고 정초에는 꼭 떡국을 먹기 때문이겠죠. 떡국을 맛있게 끓이려면 양지머리로 맑은 국물을 내고, 잘게 썰어 떡을 씻어 건져 퍼지지 않도록 끓입니다. 이때 꼭 청장으로 간을 맞추어야 제 맛이 난다고 합니다.
충청도 지방에선 쌀가루를 반죽하여 가래떡처럼 길게 늘여서 잘게 썰어 떡국과 같은 방법으로 끓이는 생떡국이 있고, 개성 지방은 가래떡을 가늘게 비벼 늘여서 나무칼로 누에고치 모양으로 잘라 끓이는 조랭이 떡국이 유명하답니다.
이렇게 새해의 첫 음식을 하얀 떡국으로 삼은 것은 흰 떡 가락이 희고 길어 장수(오래사는 것)를 의미하기 때문이랍니다.
설날 아침에 차례를 지내기 위해 또는 세배 오는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준비하는 음식을 세찬이라 한다. 세찬의 으뜸가는 것이 떡국이다. 떡국은 설날 아침에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먹는 음식이다. 떡국은 '병탕' 또는 '첨세병'이라고 하여 한 살을 더 먹는 뜻으로 쓰여 졌는데 떡국을 먹는 풍습은 최남선의 ‘조선상식’에서 흰색의 음식으로 새해를 시작함으로써 천지 만물의 부활신생을 의미하는 종교적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떡국을 만드는 방법은 지방마다 차이가 있다.
2.신선로
신선로는 화통이 가운데 있어 그 속에 숯불을 넣고, 그릇 가장자리에 채소, 고기 등 많은 재료를 돌려 화려하게 담아 호도, 잣, 은행으로 고명을 얹어 장국을 부어서 끓여 먹는 탕(湯)의 일종이다. 갖은 재료와 정성을 다해 만든 귀한 음식이니 열구자탕이라고도 한다. 곧 입을 즐겁게 해주는 탕이라는 것이니 그 맛을 짐작할 만하다.
3.약과
밀가루에 참기름을 넣고 손으로 비벼 섞어서 체에 친 다음 꿀, 청주, 생강즙을 넣고 뭉쳐서 약과판에 박는다. 온도가 낮은 기름에서 높은 기름으로 천천히 튀긴다. 약과를 맛있게 하는 비결은 너무 치대면 딱딱하니 가볍게 반죽해야 연하고, 천천히 튀겨야 약간씩 부풀면서 속까지 튀겨진다. 뜨거울 때 집청꿀에 담그면 꿀물이 들어가는 소리가 나야 맛있다. 약과는 우리나라 과자 가운데 유밀과의 대표이다. 개성의 약과는 큼직하게 하여 폐백 때 쓰는 것으로 유명하고, 서울의 것은 동글납작하면서 작게 만든다.
4.다식
명절, 제사, 차례상에 올라가는 전통 과자이며, 녹차와 잘 어울린다. 다식판은 나무에 둥근 홈을 파고 그 밑판에 글씨, 꽃무늬, 기하학적인 무늬 등을 새겼다. 다식 반죽을 하여 꼭꼭 눌러 찍어 내어 색색으로 돌려 담으면 화려하고 여러 가지 재료로 다양하게 각각의 맛을 낸다. 볶은 검은깨를 곱게 가루로 하여 꿀로 반죽한 검은깨 다식 과 봄철 소나무 꽃가루를 털어서 수비(水飛;물에 풀어 잡물을 없애는 것)하여 말렸다가 곱게 체에 내려 송홧가루에 꿀을 넣어 만드는 송화다식이 있습니다.
5.잡채
채소, 버섯, 쇠고기, 당면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볶아서 무치는 '숙채(熟菜)'의 하나로 잔칫날에는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채'(菜)란 여러 가지 재료를 채 썬 뒤 섞어 버무려 먹는 것으로, 잡채는 가장 대표적인 채이다. 만드는 법은 당면을 미지근한 물에 불렸다가 끓는 물에 재빨리 삶아내어 참기름·깨소금·소금으로 맛을 낸다. 채소는 양파·당근·오이·버섯 등을 납작 채로 썰어 볶아낸다. 볶은 고기, 채소, 당면 등을 한데 모아 양념을 무쳐 낸다. 조선 후기의 요리책 〈음식지미방〉에는 "오이·무·녹두·기름 등은 날로, 도라지·거여목·박고지 등은 삶아서 가늘게 찢어놓고 양념을 한다. 각색 재료를 가늘게 한 치씩 썰어 각각 간장을 간을 하고 기름에 볶아 교합하거나 각각 임의로 하되 큰 대접에 담는다. (중략) 천초·후추·생강을 뿌린다"고 씌어 있다. 즉 조선후기까지의 잡채에는 당면이나 고기를 쓰지 않고 주로 나물을 썼으며, 고기와 당면은 후대에 들어와 첨가된 것으로 보인다.
6.구절판
아홉 칸으로 나누어진 그릇 이름인데 나중에 그냥 음식 이름이 된 것이다. 구절판은 밀가루로 지진 얇은 떡에 여덟 가지 재료를 넣어 싸서 먹는 음식으로 쇠고기 볶은 것, 표고버섯, 오이, 당근, 숙주, 석이버섯, 달걀흰자 달걀노른자를 여덟 칸에 돌려 담으며, 가운데 칸에다 밀가루 전을 담는다.
7.갈비찜(가리찜)
좋은 갈비를 짧게 토막 내어 찬물에 담갔다 건져서 배를 갈아 넣은 양념장으로 재운다. 무, 밤, 표고버섯 등과 함께 재운 갈비를 냄비에 담고 은근히 끓여서 무르게 찜을 하고 은행, 잣, 지단으로 고명을 얹는다. 명절 상에는 고기나 생선류가 꼭 있어야 제격인데 사태찜, 도미찜, 닭찜 등도 그 대표적 인 것이다.
8.전
전(煎)은 고기, 생선, 채소 등의 재료를 다지거나 얇게 저며서 밀가루, 달걀로 옷을 입혀 번철에 기름을 두르고 앞뒤로 지지는 것이다. '저냐' 또는 '지짐개'라고도 한다. 고기류의 전은 쇠고기나 돼지고기, 닭고기, 생선, 해물 등을 다져서 두부를 으깨어 물기를 꼭 짜서 넣고 소금(간장), 다진 파, 마늘, 참기름, 깨소금으로 양념하여 동글납작하게 빚어서 밀가루, 달걀을 입혀지진 전류와 저며서 소금, 후추로 양념하여 밀가루, 달걀을 입혀서 부친 전류가 있다. 채소는 감자, 고구마, 연근 등 단단한 것은 삶아 한 번 익힌 다음 밀가루, 달걀을 묻혀 지진다. 또는 연근전처럼 밀가루 즙에 참기름과 간장을 약간 넣어 양념하여 묻혀서 지져 내기도 한다. 표고, 호박, 풋고추 등은 그대로 하거나 또는 고기 다진 것을 붙여 밀가루, 달걀을 씌워서 지진다.
9.녹두빈대떡
녹두빈대떡 녹두를 물에 담가서 불렸다가 비벼 껍질을 깨끗이 벗기고, 멧돌이나 믹서에 되직하게 간다. 고기 다진 것, 나물 등을 얹어서 번철에 돼지고기 기름을 두르고 앞뒤로 노릇노릇 구워 내면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번철에 기름을 넉넉히 두르고, 빈대떡 외에 각색 전유화와 꼬치에 꿰어 지지거나 굽는 산적, 누름적 등도 낸다.
10.나물(숙채 熟菜)
익히는 방법에는 볶기와 삶기가 있는데 한 접시에 고사리, 도라지, 시금치나물 등 3색 나물을 곁들여 담거나 한 접시씩 따로 담는다. 나물을 무치는데 꼭 있어야 할 것은 양념이며, 양념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참기름으로 나물과 참기름의 조화는 나물의 특징이다. 우리나라의 나물은 선조들이 오랜 세월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잘 구별해온 지혜에 의해 전래되어왔다.
11.식혜
단술 ·감주(甘酒)라고도 한다. 식혜는 엿기름가루를 우려낸 물에 지에밥(찹쌀밥 또는 멥쌀밥)을 넣고 따뜻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일정 시간을 삭혀서 마시는 전통음료의 하나로 후식으로 마시는 단맛의 음청류이다. 식혜는 그 위에 잣이나 모양을 낸 대추를 띄워 마시기도 한다.
12.장(醬)김치
김치는 우리나라 밥상에 꼭 오르는 대표적 음식이다. 소금으로 채소를 절여 양념에 버무려 담아 두면 유기산의 발효에 의해 우리 입맛에 꼭 맞는 영양이 좋은 음식이 된다. 명절 또는 큰일을 치를 때는 떡을 하는데, 이때 함께 먹는 김치로는 장김치가 으뜸이다. 무, 배추를 간장으로 절였다가 그 국물을 맑은 물과 합하여 소금 간을 하여 김칫국으로 붓는다. 무와 절여진 배추에 파, 마늘, 생강을 채로 썰고, 표고버섯, 석이, 실고추, 배, 미나리를 넣어 새콤히 익혀 먹는 특별한 물김치이다. 국물의 색은 엷은 간장 빛이 나고 약간의 달착한 맛과 표고버섯의 향이 나는 맛난 김치이다. 젓갈과 고춧가루는 쓰지 않으며 중부 지방이나 궁에서 해먹던 것이다.
설에 하는 놀이
설은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민속놀이는 세시풍속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하지만 세대가 변하고 사회가 디지털화됨에 따라 설날이 주는 의미가 우리가 어릴 때의 그것, 아니 우리 윗세대와 그 선조들이 느끼던 그것과 비할 때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놀이 종류로는 남자들은 공격적이고, 격렬한 놀이, 이를테면 <치기>와 <차기> 중심인데 비해 여자들은 손놀림과 율동적인 놀이, 이를테면 <놀이>와 <뛰기> 중심의 놀이가 많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민속놀이는 남녀 구분이 분명하지 않은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관습과 성 차별이 극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속놀이는 그 시대의 민중성을 승화된 형태로 간직하고 있다. 억압된 삶의 양식, 왜곡된 시대의 구체적 생활이 승화된 모습으로 민속놀이에 나타난다. 2012년 새해 설날을 맞으며 우리네 한국 사람들이 어떤 놀이들을 하며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고 하는 이 절기를 보냈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이 안에 숨겨진, 우리 크리스챤들이 간과하고 넘어가는 점성술, 음양오행설, 각종 민간신앙들을 분별해내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1.윷놀이
윷놀이를 하자! by zoomself
남녀노소가 함께 하는 가장 보편적인 놀이인 윷놀이는 주로 정월 초하루부터 보름 사이에 한 가족은 물론, 마을 사람이 함께 모여 즐기는 한국의대표적인 명절놀이이다. 둥근 나무토막이나 콩 따위의 두개를 반으로 쪼개어 네 쪽으로 만들고 이것을 던져서 엎어지고 잦혀지는 모양을 셈하여 말을 쓰는 놀이로서, 보통 많이 사용하는 장작윷은 길이 15~20센티미터, 직경3~5센티미터 정도의 윤목(輪木) 두 개를 각각 반으로 쪼개어 네 개비를 만든 것이다. 한국인이면 누구나 그 노는 방법을 알고 있을 만큼,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전승놀이로 놀이방법은 윷판을 놓고 쌍방이 각각 윷을 던져 나온 결과대로 말 4개를 진행시켜서 최종점을 통과하는 편이 이기는 것이다. 놀이의 기원지는 인도이며, 중앙아시아와 실크로드 그리고 중국을 거쳐서 들어왔다. 윷놀이를 통해 예전에는 농사의 흉풍이나 전쟁의 승패 따위를 점치기도 하였다.
2.칠교놀이
- 정사각형을 일곱조각으로 나누어 인물 동물 식물 건축물 지형 글자 등 온갖 사물을 만들며 노는 놀이다. 다른 놀이보다 많은 사고력이 필요하며 특히 어린아이들 두뇌발달을 촉진시킨다. 치매예방을 위한 어른들 뇌 운동에도 좋다.
칠교판은 크고 작은 삼각형 다섯 개, 정사각형 하나와 평행사변형 하나로 되어 있다. 이를 적절하게 배치해 칠교도 속 그림을 만드는 것. 칠교도에는 무려 5백12개 형상이 있다. 주변에서 널리 쓰는 생활용품부터 사물의 이치와 우주의 원리 같은 추상적인 것까지 형상화 했다.선인의 섬세한 손끝과 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가 있다. 오늘날 칠교 조각의 재료는 매우 다양한 것을 이용할 수 있다. 종이, 아크릴, 나무토막 등을 쓸 수 있으나 학교에서 사용할 때에는 색종이를 잘라서 코팅해서 사용하거나 아니면 하드보드지를 이용해서 제작하면 오랫동안 쓸 수 있다.
<칠교판 만들기>
①사방 10cm정도의 얇은 나무판을 그림과 같이 큰 삼각형 두 개, 중간삼각형 한 개, 작은 삼각형 두 개, 평행사변형 한 개, 정사각형 한 개로 일곱 조각을 낸다.
②나무판대신 종이나 고무판 장판 아크릴판 등으로 만들 수 있으며, 조각판에 예쁜 색이나 무늬를 그려 장식하면 더욱 멋진 놀이판이 된다.
3.고누놀이
별 다른 놀이감이 없던 시절, 아이들이 가장 먼저 익히는 놀이였다. 할아버지는 바둑을 아버지는 장기를 아이는 고누를 둔다. 오목에서처럼 제 말이 나란히 셋이 되면 상대것을 하나씩 떼내는 놀이다. 단 들어낸 곳엔 다시 말을 놓을 수 없다. 이렇게 해서 말로 다 채워지면 이젠 빈 곳으로 움직여 말을 셋으로 정렬시키면서 다시 상대것을 따먹는 놀이다. 고누에는 그림에 따라 우물고누, 줄고누, 호박고누, 자동차고누 등이 있는데 여기는 호박고누만 소개한다.
<호박고누>
① 종이에 그림과 같이 놀이판을 그린다.
② 작은 돌, 나뭇가지, 지우개 등으로 놀이판을 그린다.
③ 자기 말을 놀이판 그림1번처럼 놓는다.
④ 가위 바위 보로 누가 먼저 할 것인지 정한다.
⑤ 한 번에 한 칸씩 움직인다.
⑥ 원 안에서는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지만 처음 놓였던 진지에서 나오면 돌아갈 수도 없고 상대편 진지로 들어갈 수도 없다.
⑦ 말을 번갈아 두다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진다.
4.제기차기

인사동 제기차기 by Jinho.Jung ![]() ![]() ![]() |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놀이. 놀이방법은 한 사람씩 차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모여서 마주 차기도 한다. 발을 한번 씩 딛고 차는 `맨제기(외발차기)',제기를 차는 발을 바닥에 딛지 않고 계속 차는 `헐렁이',양발을 바꿔가며 차는 `쌍발차기'가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차다 실수하는 이에게 벌칙을 주는 것도 재미있다. 외발차기를 서울에서는 "땅강아지", 고흥에서는 "땅지기"라고도 한다.
외발차기(맨제기) 개칙구(헐렁이) 양발차기(쌍발차기)
겨루기
위의 방법 등으로 차서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많이 차는 편(혹은 사람)이 이긴다. 차다가 손으로 잡으면 처음부터 다시 찰 수 있다. 제기차기에서 진편은 이긴 편에게 종을 들인다. 이긴 사람 앞 적당히 떨어진 곳에서 진 사람이 제기를 이긴 사람에게 던져 주면 된다. 이긴 사람이 헛발질을 하거나, 차 낸 제기를 종들이는 편이 받아내면 <종들이기>는 끝난다. 그밖에 여러 사람이 둥그렇게 모여서 하는 동네 제기차기, 배구경기 규칙을 이용한 배구 제기차기 등의 놀이로 변형시켜 놀 수도 있다.
5.투호놀이
고려 때부터 궁중이나 양반집에서 손님 접대용으로 행해져 왔던 것으로 마당 한복판에 항아리를 놓고 편을 갈라 화살을 던져 넣던 것이 본래의 놀이방법, 항아리 대신 원통형 기나 빈 화병을 놓아두고 화살 대신 동전이나 조약돌, 구슬 등을 던져 넣으면 된다.
<놀이방법>
1.항아리나 쓰레기통 등의 통과 화살 또는 나무젓가락, 바둑알을 준비한다.
2.통과 던지는 자리는 보통1.5m 정도 거리를 둡니다.
3.한사람씩 열두 개의 살을 던지는데 한 개가 들어가면 10점씩 계산하여 120점 만점으로 한다.
4.가장 많은 점수를 얻은 사람이 이깁니다. 유래 본래는 중국 당나라에서 성행되었던 것인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에 전해졌던 놀이이다. 양반이나 귀족들의 놀이여서 놀이할 때 예(禮)를 갖추었다고 한다. 일반에서는 놀이 도구를 마련하는 일이며 절차가 복잡하여 감히 엄두를 못 내다가 오늘에 이르러 우리 놀이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고궁에서나 명절 행사 때 단골메뉴로 등장하여 누구나 쉽게 해볼 수 있는 놀이가 되었다.
6.널뛰기
큰 명절에 성행한 여자들의 대표적인 놀이이다. 조선조 양반사회에서는 여자들이 자연스러운 몸놀림을 억제해 왔지만 서림 사회에 깊숙이 뿌리내린 널뛰기는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널 양끝에 한 사람씩 올라와서 줄을 잡고 천천히 뛰기 시작한다. 이 때 널 가운데 한 사람이 앉아 널을 널받침 위에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가장 높이 뛴 사람이 이기거나 힘껏 굴러 상대편을 떨어뜨리면 이기게 된다.
1982_성심축전01 by loveCUK
준비물: 널빤지, 멍석묶음, 짚 인원 : 두 사람 이상
7.팽이치기

팽이치기 by zziuni ![]() ![]() |
겨울에 사내아이들이 얼음판위에서 많이 하는 놀이로 도래기 치기라고도 한다. 팽이에는 아래쪽은 뾰족하게 깎고 위는 평평하게 깎아 만든 보통팽이와 위아래 모두 뾰족하게 깎아 만든 뿔팽이가 있다.
얼음판이나 땅바닥에 손으로 팽이를 돌린 다음 가는 막대기에 헝겊 또는 삼실을 달아 만든 팽이채로 쳐서 세게 돌리는데 여러 아이들이 저마다 팽이를 힘껏 친 후 일제히 팽이채를 거두고 가 장 오래 가는 팽이를 장원으로 뽑는다. 먼 옛날 도토리나 상수리처럼 둥글고 길쭉한 물체를 돌리기 시작한데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하고, 또 다른 설은 당나라 때 놀이가 시작되어 삼국시대 때 우리나라에 전해지고 다시 일본에 건너가서 '고마'라는 이름으로 성행, 발전하여 우리나라에 역으로 전해졌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놀이방법
팽이 오래 돌리기 : 누구의 팽이가 오래 도는 가 시합합니다.
팽이 멀리 보내기 : 출발선에서 팽이를 치다가 잘 돌고 있다고 인정될 때 팽이를 한껏 쳐서 누구 것이 멀리 나가 돌고 있는가를 시합합니다.
팽이 쓰러뜨리기 : 팽이를 돌리다가 상대방의 팽이에 부딪치게 하여 쓰러뜨리는 것입니다.
<놀이방법>
팽이 오래 돌리기
누구의 팽이가 오래도는가 시합한다.
팽이 멀리 보내기
출발선에서 팽이를 치다가 잘 돌고 있다고 인정될 때 팽이를 한껏 쳐서 누구 것이 멀리 나가 돌고 있는가를 시합한다.
팽이 쓰러뜨리기
팽이를 돌리다가 상대방의 팽이에 부딪치게 하여 쓰러뜨린다.
설날의 풍속
설날의 세시풍속으로는 차례, 세배, 설빔, 덕담, 문안비, 설그림, 복조리 걸기, 야광귀 쫓기, 청참, 윷놀이, 널뛰기, 머리카락 태우기 등 그 종류가 상당히 다양하다. 이 중에서 대표적인 몇 가지를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1.설날 차례
정월 초하룻날 아침 일찍이 각 가정에서는 대청마루나 큰 방에서 제사를 지내는데, 제상 뒤에는 병풍을 둘러치고 제상에는 설음식을 갖추어 놓는다.
조상의 신주(神主), 곧 지방(紙榜)은 병풍에 붙이거나 위패일 경우에는 제상 위에 세워 놓고 차례를 지낸다. 차례상을 차리는 방법은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지방, 가문에 따라 다르다.
대체로 차례상 앞 첫째 줄에는 과일을 놓는다. 이때 붉은 과일은 동쪽에 흰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둘째 줄에는 채(菜)나 나물류를 놓는데, 포(脯)는 왼편에 식혜는 오른편에 놓고, 또 마른 것은 왼편에 젖은 것은 오른편에 놓으며, 나물류인 김치·청장(淸漿)·숙채(熟菜)는 가운데에 놓는다.
세째줄에는 탕(湯)을 놓는데, 다섯 가지 맛을 갖춘 탕으로 단탕(單湯)·삼탕(三湯)·오탕(五湯)·칠탕(七湯) 등이라 하여 어탕 (魚湯)은 동쪽에 육탕(肉湯)은 서쪽에 소탕(蔬湯)은 가운데에 놓는다.
네째 줄에는 적(炙:불에 굽 거나 찐 것)과 전(煎:기름에 튀긴 것)을 벌여 놓는데, 어류는 동쪽에, 육류는 서쪽에 놓는다. 이 때 생선의 머리는 동쪽으로, 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한다.
다섯째 줄에는 밥과 국을 놓는데, 밥은 왼쪽에, 국은 오른쪽에, 또 떡은 오른쪽에 면(麵)은 왼쪽에 놓는다.
2.세배
설날 차례를 마친 뒤 조부모, 부모에게 절하고 새해 인사를 올리며, 가족끼리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절하는데, 이를 세배라 한다. 세배가 끝나면 차례를 지낸 설음식으로 아침 식사를 마친 뒤에 일가친척과 이웃 어른들을 찾아가서 세배를 드린다. 세배하러 온 사람이 어른일 때에는 술과 음식을 내어놓는 것이 관례이나, 아이들에게는 세뱃돈과 떡, 과일 등을 준다. 세배를 할 때는 오른손이 왼손 위에 놓아서 큰절을 한다.
3.설빔
정월 초하룻날 아침에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모두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새 옷을 갈아입는데, 이것을 설빔[歲粧]이라고 한다. 이 설빔은 대보름까지 입는 것이 보통이다.《열양세시기(洌 陽歲時記)》원일(元日)조에 따르면 남녀노소가 모두 새 옷을 입는 것을 '세비음(歲庇陰)[설빔]'이라 한다 하였다.
4.덕담
설에 덕담(德談)이란, 설날에 일가친척들과 친구 등을 만났을 때 "과세 안녕히 하셨습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새해에는 아들 낳기를 빕니다." 등과 같이 그 사람의 신분 또는 장유 (長幼)의 차이에 따라 소원하는 일로 서로 축하하는 것을 말한다.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원일 (元日)조에도 설날부터 사흘 동안 시내의 모든 남녀들이 왕래하느라고 떠들썩하고,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길거리에 빛나며,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웃으면서 "새해에 안녕하시오?" 하고 좋은 일을 들추어 하례한다.
예컨대 아들을 낳으시라든지, 승진하시라든지, 병환이 꼭 나으시라든지, 돈을 많이 벌라는 말을 하는데 이를 덕담이라 한다고 하였다. 또《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원일(元日)조에 연소한 친구를 만나면 "올해는 꼭 과거에 합격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생남 하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 하는 등의 말을 하는데, 서로 축하하는 이 말을 덕담이라 한다고 하였다.
5.문안비
설날에 여자는 세배를 하러 돌아다니지 않으나, 중류 이상 양반 가문의 부인들은 자기 대신으로 잘 차려 입은 젊은 여종을 일가친척이나 그 밖의 관계있는 집에 보내어 새해 인사를 전갈(傳喝)하는데, 이때 새해 인사를 다니는 계집종을 일컬어 문안비(問安婢)라 한다. 문안을 받는 집에서는 반드시 문안비에게 세배상을 한 상 차려주며, 또 약간의 세뱃돈도 준다.
6.설그림[歲畵]
조선조 말까지의 풍속에, 설날 도화서(圖畵署:그림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서) 에서 수성(壽星) 선녀와 직일신장(直日神將)을 그려서 임금에게 드리고, 또 서로 선물로 주기도 하는데, 이를 '설그림(歲畵)'이라고 한다. 이는 축수(祝壽)하는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수성이란 장수를 맡은 노인성(老人星)을 말하는 것이고, 직일신장은 그날을 담당한 신인데, 이는 모두 도교의 신이다.
한 사람은 도끼를, 한 사람은 절월(節鉞)을 들고 황금 갑옷을 입은 두 장군의 화상(畵像)을 한 자 남짓 되게 그려서 대궐문 양쪽에 붙이는데, 이것을 '문배(門排)' 또는 설그림이라고 한다.
또한 붉은 도포와 검은 사모를 쓴 형상을 그려 대궐의 겹대문에 붙이기도 하며, 종규가 귀신 잡는 형상을 그려서 문에 붙이고, 또 귀신의 머리를 그려 문설주에 붙이니, 이것들은 다 사기(邪氣) 와 역신을 물리치는 뜻이다. 그러므로 모든 궁가(宮家)와 척리(戚里:임금의 內戚·外戚) 집 문짝에도 붙이니, 여염집에서도 이를 본받아 그림을 문에 붙였던 것이다.
7.복조리
설날 이른 아침 또는 섣달 그믐날 밤 자정이 지나서,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어 엮어서 만든 조리를 사서 벽에 걸어 두는 습속이 있는데, 이것을 복조리라고 한다. 전국에서 조리 장사가 이것을 팔기 위하여 초하루 전날 밤부터 밤새도록 인가 골목을 돌아다닌다.
이러한 풍속은 조리가 쌀을 이는 기구이므로 그해의 행운을 조리로 일어 취한다는 뜻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설날에 1년 동안 사용할 조리를 그 수량대로 사서 방 한쪽 구석이나 대청 한 귀퉁이에 걸어 두고 하나씩 사용하면 1년 동안 복이 많이 들어온다는 민간 신앙도 있다.
8.야광귀 쫓기
설날 밤에 야광(夜光)이라는 귀신이 인가에 들어와 사람들의 신을 신어 보아서 자기 발에 맞으면 신고 간다는 속설이 있는데, 만일 신을 잃어버리면 신 임자는 그해 운수가 나쁘다고 한다. 그러므로 아이들과 어른들이 모두 신을 방안에 들여놓는다. 이날 밤에는 모두 불을 끄고 일찍 자는데, 야광귀를 막기 위해 대문 위에다 체를 걸어 두니, 이것은 야광귀가 와서 체의 구멍을 세어 보다가 잘못 세어 다시 또 세고, 세고 하다가 신을 신어 보는 것을 잊어버리고, 새벽닭이 울면 물러가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9.청참
새해 첫새벽에 거리로 나가 방향도 없이 돌아다니다가 사람의 소리든 짐승의 소리든 처음 들리는 그 소리로써 그해 1년 중 자기의 신수(身數)를 점치는데, 이것을 청참(聽讖)이라고 한다. 까치 소리를 들으면 그해는 풍년이 들고 행운이 오며, 참새 소리나 까마귀 소리를 들으면 흉년이 들고 불행이 올 조짐이라고 한다. 그리고 먼 데서 사람의 소리를 들으면 풍년도 아니고 흉년도 아닌 평년작이 들고, 행운도 불행도 없이 지낸다고 한다.